사단법인 평택3·1독립운동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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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만세운동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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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남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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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 북부지역 서부지역
1-1. 평택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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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평택역 일대. 지도 상에 서쪽으로만 길이 연결되어 있다.(자료 : 국토지리정보원)

1919년 평택역에서는 3월 11일, 4월 1일, 4월 11일 세 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최초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3월 11일 약 150여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시위를 주도한 이도상, 목준상, 심헌섭, 한영수 등의 인물들이 체포되어 징역 8개월에서 1년형을 받았다. 4월 1일에는 평택역 서편에서 소요가 시작되어 사방에서 일제히 산에 불을 피웠고 일경들이 발포하여 4명이 사망하고 중상자 1명, 경상자 10여명을 내었다. 이에 일제는 밤에 출입을 금지하고, 일본인 상점을 철시시켰다. 또한 4월 11일에도 평택역 앞 사거리에서 수십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하였고, 일경들이 출동하여 주모자를 체포하고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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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평택역 서쪽 출구

오늘날 평택역은 AK프라자 등 상업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서쪽으로만 입구가 있었으나, 현재에는 동서 양 편에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으며 수도권 광역철도 1호선이 지나간다.

1-2. 부용산

객사리와 두리에 걸쳐 위치한 부용산에서는 1919년 4월 1일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매일신보』 기록에 의하면 부용면에서 주민들이 떼를 지어 안성천교 부근에서 소요를 시작하였다고 하며, 『삼일운동비사』에 의하면 팽성에서 군중들이 평택구 읍 뒷산에 불을 놓고 평택역으로 달려오며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기록을 종합해볼 때 당시 부용면 주민들이 옛 평택군의 관아인 팽성객사 뒤편 부용산에 불을 놓고, 평택역으로 이동하며 시위를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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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면 주민들의 만세시위 추정 경로

『경기남부 독립운동사적지』에서는 부용산의 주소지를 두리 산10, 11번지 일대라고 비정하였는데, 해당 지점은 산의 북사면 지점으로 정상부와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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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부용산은 팽성 뒤편 해발 42m 봉우리로부터 북으로 뻗어갔으며, 기존 조사에서 확인한 지점은 당시 북쪽 사면에 가까웠던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해당지점은 대부분 삭평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1-3. 죽백동

옛 안성군 원곡면에 속했던 죽백동에서는 1919년 4월 1일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4월 1일 최은식 등의 주도로 원곡면 칠곡리·외가천리·내가천리 등 원곡면민 약 1,000여명이 모여 외가촌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뒤이어 양성면으로 넘어가 양성면민과 합세하여 양성면 동항리에 있던 양성면사무소 앞에 몰려가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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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시위 추정 경로(위)와 죽백동에서 원곡면사무소를 바라본 모습(아래)

이로 인해 정영실·최항진·홍순태 등이 순국하고, 김시연·김창섭·박옥동·박용업·서병돈·서완득·이규창·이상신·이양섭·이영우·정호근 등 죽백리 주민 11인이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형을 받았다.

3·1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순국 또는 징역형을 받은 죽백동 주민
성명 생몰년도 주소 형량
김시연 1886.07.02.~1944.12.06.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67 징역 3년
김창섭 미상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87 징역 3년
박옥동 ? ~ 1949.04.05.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178 징역 2년
박용업 미상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68 징역 3년
서병돈 1899~미상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76 징역 1년 3개월
서완득 1886.04.16.~미상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징역 1년 3개월
이규창 1900.02.17.~1970.06.20.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51 징역 3년
이상신 1888.05.05.~1961.04.19.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86 징역 3년
이양섭 1881.12.20.~1925.05.19.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64 징역 10년
이영우 1901.12.21.~1979.07.02.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64 징역 1년 3개월
정영실 1895~1920.08.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순국
정호근 1889~미상 원곡면 죽백리 76 징역7년
최항진 1881.11.09.~1919.04.30. 원곡면 죽백리 178번지 순국
홍순태 1893 ~ 원곡면 죽백리 -

이들 본적 및 주소지가 확인되는 독립유공자들의 주소지를 일제강점기 지적원도를 통해 조사한 결과, 대다수가 방아다리·내촌의 주민들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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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방아다리·내촌 일대(자료 : 국토지리정보원)

일제강점기 죽백동 방아다리·내촌 일대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들의 주소지를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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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다리 독립유공자 소지 위치. 위는 일제강점기 지적원도, 아래는 현재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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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신(위)과 이양섭(아래)의 거주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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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원도 상의 최항진·박옥동의 주소지번(위)과 현재 모습(가운데·아래)

1-4. 진청학원 터

1921년 6월 유창근·신찬우 등이 중심이 되어 진위청년회가 조직되었고, 이들은 1923년부터 회관을 건립하기로 하여 26년 진위청년회관을 건립하고, 28년에 청년회관 내에 진청학원을 개설하였다. 이후 1945년 심상소학교와 진청학원을 병합하여 오늘날 평택중앙초등학교가 되었다. 『경기남부 독립운동사적지』에서는 지역향토사학자 김해규씨의 증언에 따라 현 원평동 삼성아파트 주차장이 진청회관 터임을 확인하였다.

현재 진청학원의 후신인 중앙초교에는 진청학원장인 이노훤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놓여져 있다. 기념비에는 이노훤공이 진청학원을 설립하였으며, 1945년 10월 30일에 12개 학급의 평택중앙초등학교가 되었음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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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원심창 거주지 터

원심창은 경기도 평택 사람으로 박열 등과 함께 흑우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1929년 동경유학생학우회 폭력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았으며 1933년 유길명 주중 일본공사를 처단할 목적으로 대기 중에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 해방을 맞이 하였다. 그의 주소지와 지적원도를 통해 조사한 결과 현재는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본적지가 반드시 생가를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기존 조사의 “생가터”보다는 거주지 또는 주소지라는 표현이 옳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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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도와 위성사진으로 본 원심창 생가터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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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창 거주지 터의 모습

평택시 독립운동관련 조사지역 일람

지도그림 gMap
지역구분 조사지명 당시주소 현주소
남부지역 평택역 진위군 병남면
평택리 185
평택시 평택동 185
부용산 진위군 부용면
객사리·두 리 일대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두 리 일대
죽백동 일원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평택시 죽백동
진청학원 터 진위군 병남면
통복리 477
평택시 통복동 477
원심창거주지 터 진위군 서면
안정리 175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175
북부지역 봉남리 진위군 북면 봉남리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
은산리 진위군 북면 은산리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야막리 진위군 북면 야막리 평택시 진위면 야막리
금암리 진위군 서탄면 금암리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
사리·수월암리 진위군 서탄면
사리·수월
암리
평택시 서탄면
사리·수월
암리
두릉리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황구지리 진위군 서탄면
황구지리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
안재홍 고가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
권익수거주지 터 진위군 북면
가곡리 313
평택시 진위면
가곡리 313
서부지역 봉오산 진위군 오성면 학현리 평택시 안중읍 학현리
백봉리 진위군 청북면 백봉리 평택시 청북읍 백봉리
대덕산 진위군 포승면 희곡리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계두봉·옥녀봉
일대
진위군 현덕면
권관리·기 산리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기 산리
오창선·이택화
거주지 터
진위군 오성면 양교리 150/ 164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150/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