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군 오성면 학현리(현 평택시 안중읍 학현리)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오성면 학현리 3·1운동 주도자로 마을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1919년 4월 초에는 경기도 안성군, 수원군, 진위군 등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진위군 내의 각 면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진위군 오성면의 학현리에서도 4월 3일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학현리 421번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공재록은 같은 마을에 살던 김용성(金容成), 이사필(李思弼)과 함께 인근의 봉오산(鳳梧山) 위에서 주민 12~13명과 봉화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체포된 공재록은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